출처가 분명한 기사였는데, 끝까지 따라가니 원문이 없었다
인터넷에서 숫자를 볼 때 나는 한동안 출처의 이름을 먼저 봤다.
정부기관이나 대학, 국제기구처럼 익숙한 이름이 붙어 있으면 적어도 근거 없는 숫자는 아닐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자료를 확인하다가 꽤 이상한 숫자 하나를 발견했다.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 여학생 10명 중 1명은 생리 기간 학교에 결석한다.”
숫자도 구체적이었다. 출처도 있어 보였다.
무엇보다 이 숫자를 전하고 있는 곳이 세계은행이었다.
2016년 6월 세계은행 블로그에는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에서 여학생 10명 중 1명이 생리 기간 학교에 빠진다는 내용이 등장한다. 바로 뒤에는 이로 인해 한 학년 수업일의 최대 20%를 잃을 수 있다는 설명도 붙어 있었다. World Bank Blogs
여기까지만 읽었다면 나 역시 별다른 의심 없이 넘어갔을 것 같다.
그런데 이번에는 숫자보다 그 앞에 붙어 있는 말을 먼저 봤다.
“A UNESCO report estimates…”
세계은행이 직접 조사한 숫자가 아니었다.
그렇다면 UNESCO 보고서를 보면 되는 일이었다.
세계은행에서 UNESCO로 넘어갔는데 끝이 아니었다
처음에는 오히려 출처가 더 단단해지는 것처럼 보였다.
세계은행이 UNESCO 보고서를 인용했다면 원문만 찾아 조사 대상과 조사 시점, 표본 규모를 확인하면 된다고 생각했다.
실제로 UNESCO 자료에서도 비슷한 숫자를 찾을 수 있었다.
UNESCO의 교육 관련 자료에는 아프리카 여학생 약 10명 중 1명이 생리 기간 학교에 결석한다는 추정치가 등장한다. 그런데 흥미로운 점이 있었다. 다른 UNESCO 자료에서는 이 숫자의 근거로 다시 다른 기관이나 자료를 인용하고 있었다. Unesco
여기서부터 질문이 달라졌다.
이 숫자를 실제로 조사한 곳은 어디일까?
기사에서 세계은행을 봤을 때는 세계은행의 통계처럼 느껴졌다.
세계은행에서는 UNESCO로 넘어갔다.
그런데 UNESCO 역시 최초 조사기관이 아니었다.
출처가 하나씩 늘어날수록 근거가 강해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원래 숫자를 만든 곳에서 멀어지고 있었다.
UNICEF까지 따라갔는데 원자료가 나오지 않았다
이 숫자의 출처를 직접 추적한 사례도 있었다.
아프리카 지역의 팩트체크 기관 Africa Check는 2016년 이 10명 중 1명이라는 숫자의 출처를 추적했다.
그 과정에서 해당 통계가 UNICEF와 UNESCO 양쪽에 귀속돼 사용되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그런데 UNESCO의 한 보고서는 다시 UNICEF를 출처로 제시하고 있었다.
여기까지만 보면 경로는 꽤 자연스럽다.
세계은행 → UNESCO → UNICEF
마지막으로 UNICEF의 조사자료만 찾으면 될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여기서 연결이 끊겼다.
Africa Check가 UNICEF에 직접 확인했을 때 UNICEF 관계자는 자신들이 잘못 인용됐거나 출처가 잘못 귀속된 사례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당시 관련 통계 담당팀에서도 청소년 여학생의 생리위생 관리에 관한 데이터 자체가 부족하다고 했다.
UNESCO 관계자에게도 숫자의 출처를 물었지만 최초 자료를 확인하지 못했다. Africa Check
내가 예상했던 구조는 이런 것이었다.
세계은행 → UNESCO → UNICEF → 조사보고서 → 조사대상 → 실제 통계표
하지만 실제 추적은 이렇게 끝났다.
세계은행 → UNESCO → UNICEF → ?
정작 가장 중요한 마지막 한 칸이 비어 있었다.
이상한 것은 숫자가 그 뒤에도 사라지지 않았다는 점이다
보통 출처가 확인되지 않은 숫자라면 시간이 지나면서 사용이 줄어들 것 같았다.
실제로는 반대였다.
2021년 UNICEF 차드 홈페이지에서도 UNESCO 보고서를 근거로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 여학생 10명 중 1명이 생리 기간 학교에 가지 않는다는 숫자가 다시 등장한다. 유니세프
더 최근 UNICEF 자료에서도 같은 표현을 찾을 수 있다. 유니세프
한 번 널리 퍼진 숫자가 다른 보고서와 기사에 인용되고, 그 자료가 다시 다음 자료의 출처가 되면서 계속 살아남은 셈이다.
학계에서도 이 문제가 지적됐다.
2021년 발표된 서아프리카 3개국의 생리 관련 학교·직장 결석 연구는 이 10명 중 1명 통계를 근거가 확인되지 않았는데도 계속 인용되는 ‘좀비 통계(zombie statistic)’ 사례로 설명했다. PubMed Central (PMC)
여기서 내가 가장 흥미롭게 본 부분은 숫자의 진위보다 출처의 모양이었다.
세계은행, UNESCO, UNICEF라는 이름을 차례대로 보면 세 기관이 각각 이 숫자를 확인한 것처럼 느껴질 수 있다.
실제로는 그렇지 않았다.
앞의 자료가 뒤의 자료를 인용하고 있었다.
기관 이름이 세 개라는 것과 독립적인 근거가 세 개라는 것은 전혀 다른 이야기였다.
그렇다고 ‘10명 중 1명은 거짓’이라고 말해도 될까
여기서 또 하나 조심해야 할 부분이 있다.
원자료를 찾지 못했다고 해서 곧바로
“아프리카 여학생은 생리 때문에 학교에 빠지지 않는다.”
라고 결론 내릴 수는 없다.
그 역시 확인된 사실보다 훨씬 멀리 나간 판단이다.
실제로 생리와 학교 출석 사이의 문제를 보여주는 연구들은 존재한다.
2021년 연구 역시 생리 기간 여학생의 학교 참여를 어렵게 만드는 요인으로 생리용품 부족, 적절하지 않은 수도·위생시설, 폐기시설 부족, 정보 부족, 사회적 지원 부족과 낙인 등을 다룬 기존 연구가 상당수 존재한다고 설명한다. PubMed Central (PMC)
UNICEF의 현재 자료에서도 생리위생과 관련한 학교 시설과 접근성 문제가 구체적인 국가 자료를 통해 확인된다. 예를 들어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 학교 가운데 생리용품을 무료 또는 유료로 제공하는 학교의 비율이 낮다는 별도의 통계가 제시돼 있다. 유니세프
따라서 확인할 대상은 현상 전체가 아니라 바로 그 숫자다.
생리가 일부 여학생의 학교생활에 영향을 준다와사하라 이남 아프리카 여학생 정확히 10명 중 1명이 결석한다는 같은 주장이 아니다.
앞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연구가 존재한다고 해서 뒤의 숫자까지 자동으로 입증되는 것도 아니다.
그래서 이 사례에서 내가 내릴 수 있는 판단은 생각보다 좁다.
현재 확인 가능한 자료만으로는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 여학생 10명 중 1명’이라는 특정 수치의 최초 조사와 원자료를 확인하기 어렵다.
그 이상으로 나가는 순간 다시 근거보다 결론이 앞서게 된다.
출처를 확인할 때 이제는 기관 이름에서 멈추지 않는다
이번 사례를 따라가면서 출처를 보는 기준이 하나 더 생겼다.
예전에는 문장 뒤에 기관명이 있으면 출처를 확인했다고 생각하기 쉬웠다.
하지만 지금은 한 번 더 묻게 된다.
“그 기관은 이 사실을 어디에서 알았을까?”
세계은행이라고 해서 거기서 멈추지 않는다.
세계은행이 UNESCO를 인용했다면 UNESCO로 간다.
UNESCO가 UNICEF를 인용했다면 다시 UNICEF로 간다.
그리고 가능하다면 마지막에는 보고서 제목, 조사 시점, 조사 대상, 표본 규모와 실제 통계표까지 확인한다.
그 지점에 도달해야 비로소 출처를 봤다에서 근거를 확인했다로 넘어갈 수 있다.
반대로 그 연결이 중간에서 끊겼다면 그것도 하나의 결과다.
원자료가 검색되지 않는다고 해서 존재하지 않았다고 단정할 필요는 없다. 오래된 자료가 온라인에서 사라졌을 수도 있고, 검색엔진에 잡히지 않았을 수도 있으며, 당시 내부자료나 인쇄물에 근거했을 가능성도 있다.
그래서 **‘원자료가 없다’가 아니라 ‘현재 확인 가능한 원자료를 찾지 못했다’**고 남기는 편이 정확하다.
이 차이가 작아 보이지만 정보의 신뢰도를 판단할 때는 상당히 중요하다.
이번에 확인한 숫자는 유명한 기관 여러 곳을 거쳤다.
하지만 여러 번 인용됐다는 사실이 최초 근거를 대신해주지는 못했다.
앞으로 기사나 게시물에서 그럴듯한 통계를 발견한다면 출처 이름만 확인하고 창을 닫지 않아도 된다.
한 번만 더 따라가 보면 된다.
그 출처는 어디에서 이 숫자를 가져왔을까?
그 질문 하나가 정보의 끝에 실제 원자료가 있는지, 아니면 또 다른 인용문만 기다리고 있는지를 갈라놓는다.
이번 글에서 확인한 판별 기준
출처가 적혀 있다는 것과 원출처가 확인됐다는 것은 다르다.
현재 페이지 → 인용한 자료 → 해당 자료가 인용한 자료 → 최초 보고서·통계표 순서로 가능한 데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같은 숫자를 세계은행·UNESCO·UNICEF처럼 여러 기관이 사용하더라도 서로를 인용했다면 독립된 세 개의 근거로 계산하지 않는다.
그리고 추적 끝에 최초 자료를 찾지 못했다면 거짓이라고 자동 판정하지 않는다.
“현재 확인 가능한 자료로는 이 수치의 원출처를 검증하지 못했다.”
그 정도에서 멈추는 것도 정보판별의 중요한 부분이다.
참고한 자료
자산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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