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급이 5% 올랐는데 왜 더 빠듯할까? ‘명목’과 ‘실질’을 구분해야 하는 이유
지난해 월급이 300만원이었던 사람이 올해 315만원을 받는다고 해보겠습니다.
15만원이 늘었으니 월급은 5% 올랐습니다.
통장에 들어오는 금액만 보면 분명 지난해보다 나아졌습니다.
그런데 같은 기간 생활에 필요한 상품과 서비스의 가격도 5% 정도 올랐다면 어떨까요?
월급은 5% 늘었지만 300만원으로 살 수 있었던 물건의 양과 315만원으로 살 수 있는 물건의 양에는 큰 차이가 없을 수 있습니다.
월급이 올랐는데도 생활이 별로 나아지지 않았다고 느끼는 상황이 이상한 것은 아닙니다.
여기에는 서로 다른 두 종류의 숫자가 숨어 있습니다.
금액 자체가 얼마나 변했는지를 보여주는 숫자와 물가 변화를 고려한 뒤 실제 가치가 얼마나 변했는지를 보여주는 숫자입니다.
통장에 찍힌 315만원은 틀린 숫자가 아니다
먼저 명목이라는 말부터 어렵게 생각할 필요는 없습니다.
실제로 표시된 금액을 생각하면 이해하기 쉽습니다.
월급이 300만원에서 315만원이 됐다면 명목임금은 5% 증가했습니다.
지난해 매출이 1억원이던 가게가 올해 1억1,000만원의 매출을 올렸다면 명목매출은 10% 증가했습니다.
국가의 GDP 역시 그해의 가격으로 계산한 명목 GDP가 있습니다.
이 숫자들은 실제 돈의 크기를 보여준다는 점에서 중요합니다.
문제는 돈의 가치가 항상 같지 않다는 것입니다.
지난해 1만원으로 살 수 있었던 상품이 올해 1만1,000원이 됐다면 똑같은 1만원의 구매력은 낮아졌습니다.
그래서 서로 다른 시점의 금액을 비교할 때는 금액이 얼마나 늘었는지만으로 실제 생활이나 생산량이 얼마나 좋아졌는지 판단하기 어려울 수 있습니다.
이때 물가 변화를 제거해 비교한 숫자가 필요해집니다.
그것이 ‘실질’이라는 표현이 붙은 지표입니다.
월급 5% 상승과 물가 5% 상승은 어떻게 읽어야 할까
숫자를 단순하게 만들어보겠습니다.
지난해 월급이 300만원이고 올해 315만원이라면 명목상 5% 증가했습니다.
그런데 지난해 1만원이었던 상품 묶음의 가격이 올해 1만500원이 됐다면 물가 역시 5% 오른 셈입니다.
지난해에는 월급 300만원으로 이 상품 묶음을 300개 살 수 있었습니다.
올해는 315만원으로 1만500원짜리 상품 묶음을 사게 됩니다.
살 수 있는 양은 역시 300개입니다.
통장에 찍힌 월급은 15만원 늘었지만 이 상품을 기준으로 한 구매력은 그대로인 것입니다.
반대로 월급은 5% 올랐는데 물가가 2% 상승했다면 상황이 달라집니다.
물가 상승분을 고려하고도 구매력이 어느 정도 개선될 여지가 있습니다.
월급이 3% 올랐는데 물가가 5% 상승했다면 숫자로 받는 돈은 늘었지만 구매력은 오히려 떨어질 수 있습니다.
그래서 임금이 몇 퍼센트 올랐다는 숫자를 볼 때는 같은 기간 물가가 얼마나 변했는지도 함께 확인해야 합니다.
매출 10% 증가가 판매량 10% 증가를 뜻하지 않는다
같은 원리는 기업의 매출에도 적용할 수 있습니다.
한 가게가 지난해 상품 하나를 1만원에 1만 개 팔았다고 해보겠습니다.
매출은 1억원입니다.
올해 상품 가격을 1만1,000원으로 올렸고 판매량은 여전히 1만 개라고 가정해보겠습니다.
매출은 1억1,000만원이 됩니다.
매출액만 보면 10% 성장했습니다.
하지만 판매한 상품 수는 1만 개로 똑같습니다.
가격이 10% 올랐기 때문에 판매량이 늘지 않아도 매출액은 10% 증가한 것입니다.
따라서 ‘매출 10% 증가’와 ‘10% 더 많이 팔았다’는 같은 의미가 아닙니다.
가격 상승이 큰 시기에는 이런 차이가 더 중요해집니다.
매출액은 크게 늘었지만 판매량은 정체되거나 오히려 감소하는 상황도 가능합니다.
매출이라는 돈의 크기를 알고 싶다면 명목 금액이 중요합니다.
실제로 상품과 서비스가 얼마나 더 많이 팔렸는지를 알고 싶다면 가격 변화와 판매량을 함께 확인해야 합니다.
GDP에서도 명목과 실질을 따로 발표하는 이유가 있다
국가 경제를 설명하는 GDP에서도 같은 문제가 발생합니다.
올해 생산된 상품과 서비스의 양이 지난해와 똑같더라도 가격이 모두 올랐다면 돈으로 계산한 GDP는 커질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경제가 가격 상승률만큼 실제로 더 많은 상품과 서비스를 생산했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경제성장률을 이야기할 때는 일반적으로 가격 변동의 영향을 제거한 실질 GDP의 변화를 사용합니다.
명목 GDP가 필요 없는 것은 아닙니다.
경제 전체의 금액 규모를 파악하거나 국가채무와 GDP를 비교하는 것처럼 현재 돈의 크기가 필요한 경우에는 명목 GDP가 중요합니다.
반면 실제 생산활동이 얼마나 증가했는지를 확인하려면 실질 GDP가 더 적합합니다.
중요한 것은 어느 숫자가 더 정확한지를 고르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알고 싶은 것이 돈의 크기인지, 가격 변화를 제외한 실제 양의 변화인지 구분하는 것입니다.
물가상승률을 그냥 빼면 항상 정확한 것은 아니다
여기서 한 가지 주의할 점이 있습니다.
월급이 5% 오르고 소비자물가가 3% 올랐으니 실질임금은 정확히 2% 증가했다고 단순하게 계산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빠르게 상황을 파악하는 데는 이런 방식이 도움이 됩니다.
하지만 정확한 실질 증가율은 단순한 뺄셈과 약간 다를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명목금액이 5% 증가하고 물가가 3% 상승했다면 실제 계산은 증가한 금액을 물가 변동으로 조정하는 방식으로 이뤄집니다.
증가율이 크지 않을 때는 단순히 5%-3%=2%로 계산한 값과 차이가 작아 직관적인 판단에 사용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공식 통계를 확인할 때는 통계기관이 산출한 실질임금이나 실질 GDP 같은 지표를 직접 사용하는 편이 정확합니다.
또 개인의 생활비가 공식 소비자물가와 정확하게 같은 비율로 움직이는 것도 아닙니다.
식비 지출이 많은 사람과 주거비 지출이 큰 사람은 체감하는 가격 변화가 서로 다를 수 있습니다.
따라서 공식 물가지수는 전체적인 구매력 변화를 판단하는 기준이지 모든 개인의 지출 변화를 그대로 보여주는 숫자는 아닙니다.
‘증가했다’는 문장을 보면 무엇이 증가했는지 확인한다
명목과 실질을 구분하는 가장 쉬운 방법은 기사에 나온 ‘증가’라는 단어 뒤에서 한 번 멈추는 것입니다.
임금이 5% 증가했다면 물가를 반영하기 전 명목임금인지 실질임금인지 확인합니다.
소비가 증가했다면 지출한 금액이 늘었다는 뜻인지 실제 구매한 상품과 서비스의 양이 늘었다는 뜻인지 살펴봅니다.
매출이 증가했다면 가격이 오른 영향이 얼마나 있었는지도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GDP가 증가했다면 명목 GDP인지 실질 GDP인지 확인합니다.
특히 물가가 빠르게 움직이는 시기일수록 이 구분은 중요해집니다.
돈으로 표시된 숫자는 증가했는데 실제 생산량이나 구매력은 거의 변하지 않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돈이 늘었는지와 살 수 있는 것이 늘었는지는 다른 질문이다
월급이 300만원에서 315만원으로 올랐다면 월급은 분명 5% 증가했습니다.
이 사실을 부정할 필요는 없습니다.
하지만 그 315만원으로 지난해보다 더 많은 것을 살 수 있는지는 별개의 문제입니다.
물가가 거의 변하지 않았다면 5%의 임금 상승은 구매력 증가로 상당 부분 이어질 수 있습니다.
반대로 물가도 비슷하게 올랐다면 통장에 들어오는 돈은 늘었어도 실제 구매력의 변화는 크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금액의 증가를 발견했을 때는 질문을 하나 더 붙이면 됩니다.
“같은 기간 가격은 얼마나 변했을까?”
그리고 경제기사에서 명목과 실질이라는 두 숫자가 함께 나온다면 어느 하나를 선택해 믿을 필요도 없습니다.
명목은 실제 돈의 규모를 보여주고 실질은 가격 변화를 걷어낸 뒤의 변화를 보여줍니다.
둘이 서로 다른 방향으로 움직인다면 오히려 그 차이에 중요한 정보가 들어 있습니다.
숫자가 얼마나 커졌는지만 확인하지 않고 그 돈으로 실제 무엇을 얼마나 더 할 수 있게 됐는지까지 확인하는 것.
그것이 물가가 변하는 시기에 금액의 증가를 제대로 읽는 방법입니다.
자산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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