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르몬 치료를 받은 여성은 심장병이 적었다, 임상시험을 하자 결과가 달라졌다
1990년대 폐경 후 여성의 호르몬 치료를 둘러싼 연구에는 꽤 매력적인 결과가 있었다.
호르몬 치료를 받는 여성에게서 심장질환이 더 적게 나타난다는 것이었다.
1991년 발표된 Nurses’ Health Study 분석에서는 현재 에스트로겐을 사용하는 여성의 주요 관상동맥질환 상대위험도가 사용 경험이 없는 여성보다 낮게 나타났다.
연구진은 에스트로겐 사용과 주요 관상동맥질환 위험 감소 사이에 관계가 있다고 보고했다.
이런 결과만 보면 자연스러운 결론이 하나 떠오른다.
호르몬 치료가 심장병을 막아주는 것 아닐까.
그런데 몇 년 뒤 훨씬 강한 방식으로 이 질문을 시험한 연구가 나왔다.
결과는 예상과 달랐다.
호르몬 치료의 심혈관 보호효과는 확인되지 않았다.
일부 심혈관 위험은 오히려 증가했다.
같은 치료를 두고 왜 연구 결과가 이렇게 달라졌을까.
처음 연구에서는 실제로 위험이 낮게 나타났다
Nurses’ Health Study는 미국 여성 간호사들을 장기간 추적한 대규모 연구다.
1991년 발표된 논문에서는 폐경 후 여성의 에스트로겐 사용과 심혈관질환의 관계를 분석했다.
연구진이 여러 위험요인을 보정한 뒤에도 현재 에스트로겐 사용자의 주요 관상동맥질환 위험은 사용 경험이 없는 여성보다 낮게 나타났다.
이것은 만들어낸 숫자가 아니었다.
실제 조사자료에서 확인된 관계였다.
문제는 그다음 문장이었다.
그렇다면 에스트로겐을 사용했기 때문에 심장병이 줄어든 것일까.
관찰연구만으로는 이 질문에 답하기 어렵다.
왜냐하면 연구자가 여성들에게 무작위로 호르몬 치료를 배정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미 치료를 선택한 여성과 그렇지 않은 여성을 관찰했다.
두 집단 사이에는 치료 여부 외에도 다른 차이가 있을 수 있었다.
치료를 선택한 사람 자체가 달랐을 수 있다
예를 들어 호르몬 치료를 적극적으로 받는 여성들이 있다고 하자.
이들은 그렇지 않은 여성보다 의료서비스를 더 자주 이용했을 수 있다.
건강정보에 관심이 많았을 수도 있다.
교육이나 소득수준이 달랐을 수도 있다.
운동이나 식생활 같은 생활습관에서도 차이가 있을 수 있다.
이런 특성 가운데 일부는 심혈관질환 위험과도 관련될 수 있다.
그러면 결과를 이렇게 볼 수 있다.
호르몬 치료를 받은 여성에게 심장병이 적었다.
이 문장은 관찰된 사실일 수 있다.
하지만
호르몬 치료 때문에 심장병이 적었다.
는 문장은 한 단계 더 나간 주장이다.
두 문장 사이에는 다른 원인을 얼마나 제거했는가라는 문제가 들어 있다.
이 문제를 무작위시험으로 다시 물었다
1990년대 미국 국립보건원은 대규모 연구인 **Women’s Health Initiative(WHI)**를 시작했다.
여기에는 폐경 후 여성의 호르몬 치료 효과를 알아보기 위한 무작위 임상시험이 포함됐다.
자궁이 있는 여성 16,608명이 참여했다.
연구진은 참가자들을 무작위로 나눠 한쪽에는 에스트로겐과 프로게스틴 복합제를, 다른 쪽에는 위약을 제공했다.
JAMA – Risks and benefits of estrogen plus progestin in healthy postmenopausal women
무작위 배정은 중요한 차이를 만든다.
치료를 원래 선택할 가능성이 높은 사람과 낮은 사람이 자연스럽게 갈라지는 것이 아니다.
연구자가 우연에 따라 집단을 배정한다.
충분히 큰 표본에서는 알려진 요인과 알려지지 않은 요인이 두 집단에 비교적 고르게 분산될 가능성이 높아진다.
따라서 결과 차이를 치료 자체와 연결해 해석할 근거가 관찰연구보다 강해진다.
2002년 결과는 예상했던 보호효과와 달랐다
WHI의 에스트로겐·프로게스틴 병용시험은 원래 계획보다 일찍 중단됐다.
2002년 JAMA에 발표된 주요 결과에서 연구진은 평균 약 5.2년의 추적 후 전체적인 위험과 이익의 균형이 만성질환 예방을 위한 이 치료의 사용을 지지하지 않는다고 결론 내렸다.
관상동맥질환의 위험비는 1.29였다.
뇌졸중은 1.41.
폐색전증은 2.13이었다.
반대로 고관절 골절이나 대장암에서는 위험 감소가 나타났다.
즉 모든 결과가 한 방향으로 움직인 것도 아니었다.
JAMA – Risks and benefits of estrogen plus progestin in healthy postmenopausal women
여기서 특히 눈에 들어오는 것은 관상동맥질환이었다.
이전 관찰연구에서 기대했던 강한 심혈관 보호효과가 무작위시험에서는 나타나지 않았다.
오히려 해당 병용요법에서는 위험이 증가하는 방향의 결과가 나왔다.
그렇다면 예전 관찰연구는 틀렸던 걸까
이렇게 말하면 너무 단순하다.
관찰연구가 측정한 결과 자체가 거짓이었다는 뜻은 아니다.
호르몬 치료를 사용한 여성에게서 심장질환이 적게 관찰됐다는 것은 당시 자료에서 실제로 나타난 관계였다.
문제는 그 관계의 원인을 무엇으로 해석하느냐였다.
관찰연구에서는 연구자가 측정한 다른 위험요인을 통계적으로 보정할 수 있다.
하지만 측정하지 않은 요인까지 완벽하게 제거하기는 어렵다.
이를 잔여 교란(residual confounding)이라고 부른다.
또 치료를 선택하는 사람의 특성이 결과와 연결되는 healthy user effect 같은 문제도 생길 수 있다.
따라서 관찰연구에서 A와 B가 함께 나타났다고 해서 A가 B를 일으켰다고 바로 말할 수는 없다.
그런데 WHI 하나로 모든 호르몬 치료를 같은 것으로 봐도 안 된다
여기서 또 한 번 멈춰야 한다.
WHI 결과를 보고
“호르몬 치료는 모든 여성에게 언제나 심장병을 일으킨다.”
라고 결론 내리는 것도 정확하지 않다.
WHI에는 서로 다른 호르몬 치료 시험이 있었다.
자궁이 있는 여성에게 사용한 에스트로겐·프로게스틴 병용요법과 자궁적출술을 받은 여성의 에스트로겐 단독요법은 구분된다.
참가자의 치료 시작 연령이나 폐경 이후 경과기간도 이후 중요한 연구주제가 됐다.
후속 분석에서는 치료를 시작하는 시점에 따라 심혈관 위험과 이익의 균형이 달라질 가능성, 이른바 timing hypothesis도 연구됐다.
미국 심장학회와 관련 학술자료에서도 폐경호르몬요법의 심혈관 효과를 치료 종류, 연령, 폐경 이후 시점, 개인의 위험요인 등을 고려해 해석해야 한다고 설명한다.
American Heart Association – Rethinking Menopausal Hormone Therapy
이번 사례의 목적은 호르몬 치료에 대한 현재의 개인별 의료결정을 내리는 것이 아니다.
관찰된 연관성과 인과효과가 왜 다를 수 있는지를 보는 것이다.
‘함께 나타났다’에서 ‘때문이다’로 넘어갈 때 질문이 필요하다
정보를 읽다 보면 비슷한 문장을 자주 만난다.
커피를 많이 마시는 사람은 ○○ 위험이 낮았다.
수면시간이 짧은 사람에게 ○○가 많이 나타났다.
특정 음식을 먹는 사람은 ○○ 질환이 적었다.
이런 결과는 중요한 연구결과일 수 있다.
하지만 다음 문장은 다르다.
커피가 ○○를 예방한다.
수면 부족이 ○○를 일으킨다.
그 음식을 먹으면 ○○ 질환을 막을 수 있다.
첫 번째 문장들은 두 변수의 연관성을 설명할 수 있다.
두 번째 문장들은 인과관계를 주장한다.
단어 몇 개 차이지만 필요한 증거의 수준은 달라진다.
제3의 변수가 두 현상을 함께 움직일 수도 있다
가장 단순한 예를 생각해보자.
여름에 아이스크림 판매량이 증가한다.
같은 시기에 물놀이 사고도 증가할 수 있다.
두 숫자는 함께 움직일 가능성이 있다.
그렇다고 아이스크림이 물놀이 사고의 원인이라고 결론 내릴 수는 없다.
기온 상승이라는 다른 요인이 두 현상 모두와 연결될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 연구에서는 이런 제3의 변수를 교란변수(confounder)라고 부른다.
현실에서는 아이스크림 예시보다 훨씬 복잡하다.
연령, 소득, 건강상태, 의료이용, 흡연, 운동, 식습관 등 수많은 변수가 서로 얽혀 있다.
연구자가 여러 변수를 통계적으로 보정하는 이유다.
하지만 관찰되지 않은 변수까지 완벽하게 보정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무작위시험이 강력한 이유가 여기에 있었다
무작위 대조시험은 이런 문제를 줄이기 위해 참가자를 우연에 따라 집단에 배정한다.
누가 더 건강관리에 적극적인지 연구자가 일일이 완벽하게 측정하지 못하더라도, 충분한 규모의 무작위 배정은 그런 특성이 특정 집단에 몰리는 것을 줄이는 데 도움을 준다.
그래서 의학에서 치료의 인과효과를 확인할 때 무작위 대조시험이 중요한 근거로 사용된다.
그렇다고 무작위시험도 완벽한 것은 아니다.
연구 참가자가 실제 환자 전체를 대표하지 않을 수 있다.
추적기간이 짧을 수도 있다.
중도 탈락이 발생할 수 있다.
희귀한 부작용을 확인하기에는 규모가 부족할 수도 있다.
어떤 질문은 윤리적 이유로 무작위시험 자체가 불가능하다.
따라서
관찰연구는 쓸모없고 무작위시험만 믿는다
는 것도 올바른 정보판별법은 아니다.
연구 방법을 확인하면 문장의 강도를 조절할 수 있다
기사를 읽을 때 연구방법을 한 줄만 확인해도 도움이 된다.
10만 명을 10년간 추적했다.
이런 표현이 있다면 대규모 연구라는 사실은 알 수 있다.
하지만 사람들이 스스로 어떤 행동을 했는지를 관찰한 것인지, 연구자가 행동을 무작위로 배정한 것인지는 별개의 문제다.
표본이 크다고 자동으로 인과관계가 되는 것도 아니다.
100만 명을 관찰해도 연구설계가 관찰연구라면 교란 가능성을 고려해야 한다.
반대로 비교적 작은 무작위시험도 질문에 따라 강한 인과적 근거를 제공할 수 있다.
숫자의 크기보다 어떻게 비교했는가가 중요할 때가 있다.
기사에서 동사를 바꿔 읽어본다
상관관계와 인과관계를 구별하는 간단한 방법이 있다.
기사의 핵심 문장에서 동사를 찾는다.
관련됐다
함께 나타났다
연관성이 있었다
라고 되어 있다면 그대로 읽는다.
머릿속에서
일으켰다
예방했다
효과가 있다
로 바꾸지 않는다.
반대로 기사 제목에서 이미
예방한다
위험을 높인다
원인이다
라는 강한 표현을 사용했다면 연구방법을 확인한다.
무작위시험인가.
관찰연구인가.
자연실험인가.
시간적 선후관계는 확인됐는가.
다른 설명을 얼마나 배제했는가.
인과관계라는 결론은 단순히 상관계수가 높다는 이유만으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18편의 0.993과 이번 이야기는 다른 문제다
앞선 글에서는 마가린 소비와 메인주 이혼율이 약 0.993이라는 높은 상관관계를 보였다.
그 사례는 관계없는 두 시계열도 놀랄 만큼 비슷하게 움직일 수 있다는 극단적인 예였다.
이번 사례는 더 어렵다.
호르몬 치료와 심혈관질환 사이에는 생물학적으로 연구할 만한 이유가 있었다.
실제 의학연구도 진행됐다.
관찰연구에서 관계도 나타났다.
즉 처음부터 터무니없는 조합이 아니었다.
그런데도 연관성에서 인과효과로 넘어가는 과정에서는 더 강한 연구설계가 필요했다.
현실에서 우리가 만나는 문제는 대부분 이쪽에 더 가깝다.
상식적으로 말도 안 되는 두 숫자를 구별하는 것보다, 충분히 그럴듯한 관계를 어디까지 믿을지 판단하는 일이 더 어렵다.
결과가 뒤집힌 것처럼 보여도 연구가 쌓인 과정일 수 있다
신문기사만 시간순으로 보면 이런 느낌을 받을 수 있다.
호르몬 치료가 심장병을 예방한다더니 몇 년 뒤에는 위험하다고 한다.
그러면 과학연구가 계속 말을 바꾸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연구설계를 함께 보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관찰자료에서 관계를 발견했다.
그 관계가 인과적인지 질문이 생겼다.
더 강한 방식의 무작위시험을 진행했다.
예상과 다른 결과가 나왔다.
이후 다시 치료 종류와 시작 시점, 참가자의 특성 등을 나눠 연구했다.
결론이 단순히 뒤집힌 것이 아니라 질문이 점점 정교해진 과정으로 볼 수 있다.
이번 글에서 확인한 판별 기준
두 현상이 함께 나타났다는 연구를 보면 바로 원인과 결과로 연결하지 않는다.
먼저 연구가 관찰연구인지 무작위시험인지 확인한다.
관찰연구라면 두 집단 사이에 다른 차이가 있을 가능성을 생각한다.
연구진이 어떤 교란변수를 보정했는지 확인한다.
표본이 크다는 이유만으로 인과관계가 입증됐다고 판단하지 않는다.
기사에서 관련됐다는 표현을 원인이다로 바꿔 읽지 않는다.
반대로 관찰연구라고 해서 가치가 없다고 판단하지도 않는다. 장기간의 위험이나 무작위시험이 불가능한 질문에서는 매우 중요한 근거가 될 수 있다.
그리고 후속 연구가 있다면 연구설계가 더 강해졌을 때 결과가 유지되는지 확인한다.
1990년대 호르몬 치료 연구에서 실제로 보였던 것은
치료를 받는 여성에게 심장질환이 적게 나타났다는 관계였다.
그다음 질문은 별개였다.
“호르몬 치료 때문에 적었던 것인가?”
그 질문을 무작위시험으로 다시 물었을 때 처음 기대했던 심혈관 보호효과는 그대로 나타나지 않았다.
함께 움직인다는 사실은 중요한 단서다.
하지만 원인을 말하려면 그 단서에서 한 단계 더 가야 했다.
참고한 자료
JAMA – Risks and benefits of estrogen plus progestin in healthy postmenopausal women
National Heart, Lung, and Blood Institute – Women’s Health Initiative
American Heart Association – Rethinking Menopausal Hormone Therapy
자산맥




댓글 0
첫 댓글을 남겨보세요.